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버나드 로 몽고메리 (문단 편집) === 전후 === 몽고메리 원수는 전쟁이 끝난 후에 연합군측 독일 점령군 사령관을 역임했으며 [[1946년]] 몽고메리 오브 알라메인 [[자작(작위)|자작]]에 서임되었고, 영국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했다. 까탈스러운 성질과 정치적 처세술의 미흡함 때문에 참모총장 당시 평은 영 좋지 않았다. 이후 초대 [[유럽연합군 최고사령부]] 부사령관[* 당시 사령관은 [[미 육군]]의 [[드와이트 D. 아이젠하워]] 원수였다.]을 역임, 그리고 NATO에서 물러난 뒤에는 군을 은퇴하여 저술 활동을 하다가 사망했다. 문필가로써의 평가는 《전쟁의 역사》도 그렇고,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는 평이다. 자칭 시인인 [[조지 S. 패튼]]이 악평을 받은 것과는 대조적이다. 그 밖에도 남아공 백인정권의 [[아파르트헤이트]]를 지지하거나 [[대약진 운동]] 중인 중국을 방문, [[마오쩌둥]]에게 속아 중국이 기아상태라는 말은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흑역사를 남겼다. 몽고메리 장군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자신의 라이벌들인 [[에르빈 롬멜|롬멜]]이나 패튼과는 달리 89세라는 천수를 누리고 1976년 [[햄프셔]]의 저택에서 편안히 사망했다. 사후 [[윈저 성]]의 세인트 조지 예배당에서 성대한 장례식이 치러졌다. 그 후 몽고메리 장군의 금고를 열었지만 리볼버 권총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다고 한다. 죽기 전 자신의 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는지 이런 말을 남겼다. > "이제 주님께 나아가 내가 알라메인에서 앗아갔던 모든 목숨들에 대한 용서를 빌어야겠지...''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